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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따뜻한 콩국과 찹쌀빵 vs 그리고 중국 본토의 더우장과 유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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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스트 2020. 5. 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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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식 콩국과 튀긴 빵

 

대구 콩국. 따뜻한 국물에 튀긴 찹쌀빵이 들어가는 대구의 별미입니다. 요즘은 파는 곳이 많이 없어 그 맛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 중국이나 대만 여행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거 그냥 더우장에 유타오 아니야?" 라고 되묻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대구 향토음식도 '한국식 짜장면' 만큼이나 긴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음식입니다. 

 

대구에 처음 화교인구가 늘기 시작한 것은 1905년의 일입니다. 한반도 화교 정착 1세대가 1900년대 극 초반에 들어옵니다. 1894년 일본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중국은 쇠퇴기에 들어가고, 화교들은 세계 각지로 퍼집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인천과 대구 등 상업도시에 정착하게 되죠.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 인천 등에 거주하던 수도권 화교들은 다 피란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들이 또 한번 정착한 것이 대구입니다.

 

대구 화교들은 아침 식사로 먹던 더우장과 유타오를 파는 노점과 점방을 마련하여 장사를 시작했는데, 재료 수급이 쉽고 만드는데 큰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짜장면과 같은 같은 한국식 중국 요릿집을 차리자면 설비도 있어야 하고 기술도 좋아야 하고, 재료도 꾸준히 수급해야겠죠. 인천처럼 배가 드나드는 곳에서는 짜장면 집도 차려볼만 했겠지만 피란 와 정착한 대구에서 중국요릿집을 차릴 수 있는 기술자는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 콩국과 유타오(튀긴 빵)은 누구든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콩국은 조금 수고만 들이면 쉽게 만들 수 있어서, 따뜻한 대구 옛날 콩국이 아니어도, 차가운 한국식 콩국 역시 우리 옛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단골 장사 품목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화교 탄압이 시작되며 1960년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이 생기고, 70년대 외국인 토지 취득 관리법이 생기면서 화교들은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집니다. 한국에서 살던 화교들은 가까운 대만이나 미국, 호주 등으로 떠나고 대구의 화교들은 거의 다 이민행렬에 오르고 그들이 팔던 유타오와 콩국만 남아 변형된 것이 지금의 대구 따뜻한 콩국입니다.

 

원래 중국의 더우장과 유타오는 아침식사입니다. 따뜻하고 맑은 두유식 콩국물에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푸석한 빵인 유타오를 찢어 넣어 한그릇 먹는 음식인데요. 만드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이 유타오는 밀가루를 길다랗게 반죽해 꼬거나 접은 다음 기름에 그냥 튀기면 끝입니다. 반죽을 묽고 질척질척하게 만든다음 소금 간만 해서 발효시키는데 그 다음 튀기면 식감이 좀 쫄깃해집니다. 찢어보면 속엔 커다란 구멍이 숭숭 나 있어서 더우장에 적셔 먹기 좋죠. 원래 반죽보다 굉장히 크게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국물에 적셔 먹으면 포근한 맛이 나고 고소합니다. 너무 오래 담그면 유타오가 완전히 눅눅해져 버려서 따로 찍어먹기도 하고 다 찢어서 넣은 다음엔 금방 후루룩 먹게 됩니다.

 

이 음식이 대구에 정착하고 또 한국 사람들 손을 다시 거치면서 빵 재료에 찹쌀가루가 더 들어가게 되는데요. 원래 유타오는 숙성된 밀가루 자체의 맛에 먹는 게 정통입니다. 본토에서는 발효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죠. 하지만 한국인들이 워낙 쫄깃한 음식, 찹쌀 맛을 좋아해서 대구 콩국에 들어가는 찹쌀빵은 유타오와는 그 맛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야 국내에서 한 세기 동안 변형이 일어났으니까요. 대구 콩국을 먼저 먹은 사람이 중국 유타오로 입을 달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유타오와 더우장으로 매일 아침 식사 하던 사람이 대구 콩국으로 매일 아침 식사를 하기는 또 어렵습니다. 그런 정도의 맛 차이입니다.

 

대구 콩국은 국물도 좀 더 구수한 편입니다. 담아 내기 전에 아래 땅콩가루와 콩가루를 깔고 그 위에 쫄깃한 빵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콩물을 붓는데 여기 들어간 튀김빵은 쉽게 눅진해지지 않고 오래 원형을 유지합니다. 국물 또한 중국 것은 좀 맹하고 기름진데 (그게 중국식 빵과는 어울립니다) 대구 콩국엔 가게에 따라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콩가루 말고도 달걀 노른자, 땅콩, 들깨나 참깨 같은 것을 넣어 맛을 내기도 합니다. 진하고 고소하고 뜨겁죠.

 

예상이 가는 맛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구수한 별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구에도 옛날 그 콩국을 파는 집이 몇 남지 않았습니다. 대구 사람이라 해도 젊은 세대는 이 옛날 콩국의 존재를 모른다고 합니다.

 

반대로 전국에 다시 중국 화교 요리점이 많이 생기면서 인천, 부산 등지의 차이나타운에서 유타오와 더우장을 먹어본 사람은 많아지고 있고요. 그 맛이 여러 모로 다른데 좀 아쉽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 따뜻한 콩국 얘기를 해보면 "어차피 중국 음식 아니에요? 그게 왜 대구 음식이에요." 합니다. 그간 타국에서 '대구 콩국'의 형태로 100년간 많이도 변했던 유타오와 더우장이 요리의 원형을 찾아갔으니 잘 됐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한 세월 사랑 받던 음식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건 슬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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