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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의 어원 (그리고 순화어: 유아차, 베이비카 등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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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스트 2023. 11. 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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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라는 표현은 19세기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유럽의 철학, 법률은 물론 각종 개념어와 단어들을 일본어, 한자어 등으로 번역하는 데 열심이였다. 

 

그중 영국왕실에서 쓰이던 perambulator(당시 유모차)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산책하는 사람을 뜻하는 'perambulate'의 라틴어 형태로 된 동작명사로, 직역한다면 산책시키는 것, 산책시키는 물건 정도로 부를 수 있다.  

 

영국의 19세기 유모차 모습

 

 

 

그런데 당시 일본인들의 영어 실력이 높지 않고, perambulator의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아기 수레의 명칭을 붙이려다 보니, 유모나 하녀가 끄는 차구나 해서 '유모차', '유모거', 즉 우바구루마라고 번역한 것이다.

 

○うば‐ぐるま[乳母車] 乳幼児を乗せて押して歩く四輪の手押し車。
우바-구루마[유모거] 젖먹이나 어린 아이를 태워서 밀고 다니는 네 바퀴의 손수레.

○ うば[乳母]母親に代わって乳児に乳を飲ませたりして、養育する女。おんば。めのと。
우바[유모] 모친을 대신해서 유아에게 젖을 먹이거나 양육하는 녀자. 온바. 메노토.

 

원래 저 수레는 탄생시부터 단 한번도 '유모'와 관련된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다.

중국에서도 이것을 영아(매우 어린 아이)차로 번역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stroller, pram, baby carriage 등이 주류이고 다 수레 또는 이동, 순회 등의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전 세계에서 일본과, 일본에 식민지배를 당했던 한국만이 이 베이비카를 '유모차'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만 정작 이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일본에서는 이 오역된 명칭을 얼른 치우고 싶어하여 현재는 '베이비카'라고 부르는 현실이다. 또한 그외에도 실제로 유모차를 구매하는 일본의 부녀층이 유모차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은 점, '유모차'라는 단어를 들으면 구식 제품일 것으로 상상해버리는 사람도 많아서 때문에 더 빨리 사어화하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 언어 순화 및 성평등 언어에 대한 운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유모차 또한 '유아차' 또는 '아기차'로의 순화 또한 이 흐름 내에서 처음 권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모차'라는 단어가 엄마 중심의 육아를 강요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는데 이에 따라 성평등 운동 등의 일환으로 의도적인 변경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가 마침 세계적으로 언어 변경 운동이 유행이었던 때이다. 유럽연합에서도 여성 이름 앞에 ‘미스(Miss)’와 ‘미시즈(Mrs)’를 금지하고, '마담'과 '마드모아젤', '프라우'와 '프로일라인', '세뇨라'와 '세뇨리타'도 금지되었으며, 스포츠맨과 스테이츠맨, 매니저리스와 헤드마스터, 폴리스맨 등도 모두 애스리츠와 헤드 티처, 폴리스 오피서로 바뀌는 등 언어 순화 운동이 국제적 유행이었으므로 각 단체 및 정치인들도 이를 따라갔다.

 

'유아차'라는 단어가 표준어 등재된 것은 2010년대. 맘카페나 여성 커뮤니티 등에서는 현재 혼용 시기도 성숙기에 이르러 주 사용층, 실 구매층 여성들 사이에서는 통상적으로 '유아차'라고도 흔히 병행, 또는 대체하여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검색해보면 애 엄마들이 '유모차'라는 단어는 혼자 육아하라는 말 같다, 내가 유모냐 등등 불쾌한 단어라는 의견이 많으며, 워낙 싫어들 하기 때문에 공공기관 등에서도 현재는 산모, 출산자 대상 안내 등에서 유모차보다는 유아차라는 단어가 훨씬 많이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언어 순화 작업 중에는 지적이 억지스러운 것, 의도는 이해되지만 순화어가 훨씬 어감이 안 좋거나 신조어 짓는 방식이 무성의한 것(포궁, 부남, 부제 등)이 너무 많았고, 이에 따라 유의미하게 정착된 것이 거의 없는 반면, 유아차는 지적의 합리성이 있는 편이고, 순화어도 해외 평균을 따른 것이라 빠르게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의도로 교정된 언어 중 공식적인 곳에서 잘 정착된 순화어로는 디지털 성범죄, 불법 촬영, 비혼, 한부모 가정, 학부모 등이 있고, 대중화에 실패한 케이스로는 포궁, 정혈, 살림꾼, 처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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